한국 주거 문화의 트렌드를 이끌어온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 비닐하우스에서 밭을 디자인하는 그린 디자이너. LIVING AXIS 최시영 대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최시영은 한국 실내건축가 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국 디자인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 받아 산업포장/대통령상을 수여 받았다. 하노버국제 IF디자인 3회 수상 및 아시아태평양협의회상, 문화부장관상, 매일경제신문회장상, 골든스케일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플랜테이션, 인천공항, 세종시 총리실 아트디렉터로 참여하였으며, 숙명여대, 홍대대학원 등에서 겸임교수 및 강의를 꾸준히 하였다. 작품으로는 타워팰리스, 류미재, 롯데월드타워, 전경련 스카이팜, 팔레스호텔, 조선호텔스위트, 파주 헤르만하우스, 오피스텔 두빌, 신촌 CGV, 알렉스더커피 등이 있다. 최근에는 세상과 아름답게 소통하기 위한 명제로, 자연 앞에 겸손하고 인간에게 친절한 작업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롯데 시그니엘 UNIT

Q. 국내 최고의 공간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A. 어릴 적에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사생대회에 나가면 큰 상도 많이 받았는데, 한번도 집에 가져오지를 못했다. 당시만 해도 '예술하다가는 결혼도 못 하고 가족도 못 먹여 살린다'라는 인식이 강했고, 집안의 반대도 무척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고등학교를 마치고 마지못해 선택한 전공이 건축이었고, 건축과를 졸업한 후에 친구와 함께 개인 주택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가 1988년 즈음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나라건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올라가면 문화, 소비가치, 사람들의 의식 등에 터닝포인트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주거 공간에 대한 질적 향상, 변화의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업무가 복잡하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은 클라이언트들은 단순한 공간을 원하는 경우가 많더라. 마침 나도 그때는 흔치 않던 미니멀, 모던한 공간 디자인 작업을 많이 했기에 클라이언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하나둘씩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



서초 롯데주택전시관

Q. 국내 최고의 공간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A. 어릴 적에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사생대회에 나가면 큰 상도 많이 받았는데, 한번도 집에 가져오지를 못했다. 당시만 해도 '예술하다가는 결혼도 못 하고 가족도 못 먹여 살린다'라는 인식이 강했고, 집안의 반대도 무척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고등학교를 마치고 마지못해 선택한 전공이 건축이었고, 건축과를 졸업한 후에 친구와 함께 개인 주택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가 1988년 즈음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나라건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올라가면 문화, 소비가치, 사람들의 의식 등에 터닝포인트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주거 공간에 대한 질적 향상, 변화의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업무가 복잡하고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은 클라이언트들은 단순한 공간을 원하는 경우가 많더라. 마침 나도 그때는 흔치 않던 미니멀, 모던한 공간 디자인 작업을 많이 했기에 클라이언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하나둘씩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

Q.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1999년에 완공됐지만, 아직까지도 회자되며 '대한민국 주상복합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혹은 '하이엔드 주거문화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A. 이제 듣는 사람들이 좀 식상해 할 것 같다. "언제적 타워팰리스를 아직까지 우려먹나" 하지 않을까? (웃음) 타워팰리스는 사실 대단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기보다는 내가 그전까지 비공개 개인 주거 작업을 하며 만들어온 공간 디자인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뿐이다. 천장 몰딩을 없앤다든가, 주거 공간에 패밀리 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등 기존에는 없던 관점을 제시한 것처럼. 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계자(최시영, 이종환, 민영백)를 전면으로 내세웠던 주상복합 공간이라는 점도 있었기 때문에 타워팰리스 프로젝트가 꽤나 센세이셔널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流美齎 (RYU MI JAE)



오피스텔 DEUX VILLE



SDE 사옥

Q. 문화관광부 장관상, 골든스케일디자인 어워드 등 국내뿐만 아니라 iF 디자인어워드, Reddot 디자인어워드 등 국제적인 어워드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리빙 엑시스와 최시영 디자이너가 이토록 사랑받고 주목받는 까닭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A.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기회가 자주 온 것 같기도 하고, 희한하다. 해외에 iF 디자인어워드, Reddot 디자인어워드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근데 주변에서 추천을 해주더라. 신기하게도 주변에서 공모해보라고 먼저 연락이 왔고, 그래서 출품을 해보면 떡 하니 상을 받았다. 나는 그저 그때그때 디자인을 통해 나의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게 잘 맞았나 보다.



FARMER'S DADDY



Q. Farmer's Daddy처럼 'Green'을 키워드로 하는 프로젝트들도 많이 하고 있다. 어떻게 그린, 가든에 빠지게 되었나?

A. 가든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가지 미덕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는 '사색'과 '위로'다. 앞서 언급했듯 가든, 그린 역시 '나의 이야기'이다.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주로 할 때는 정말 하는 족족 성공하니까 건설사 측에서도 나를 많이 찾아주었고, 물밀듯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나 촉박한 스케줄 때문에 하루하루가 영혼이 탈탈 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었고, 힐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에게 그게 가든, 그린이었다. 일전에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를 소개받고 정원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다가 15년 넘게 잊고 살던 아버지 소유의 2,000평 정도 되는 땅이 생각나서 문득 찾아가봤다.

분명히 어릴 적의 기억으로는 밭이었는데, 그때 가서 보니까 거의 산의 일부가 되어 있더라. 거기서 잡초 제거에서부터 시작해 꽃과 나무를 심으며 농사를 접하게 됐다. 내가 지금껏 해온 일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디자인은 수시로 바뀌고, 마감 기한이 정해져 있고, 하나를 끝내면 다음 일이 줄을 서 있었는데, 농사는 그렇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해가 바뀌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무언가를 심으면 바로 결과를 보고 바꿀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천천히, 묵묵히. 자연스럽게 '밭'을 디자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농사와 관련된 특강도 듣고, 스스로 연구도 하고, '가드닝'의 본고장인 영국을 종단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거의 8년 동안 천천히 가꾸어온 농장을 대중들에게 오픈한 게 Farmer's Daddy다.



에덴 메모리얼리조트

Q. 에덴 프로젝트 역시 가든과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봉안당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A. 에덴이 가장 최근에 작업한 '그린' 프로젝트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곳에는 일반적인 호텔을 지을 예정이었는데, 에덴낙원 재단의 이사장으로부터 납골당 부지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멋진 정원과 호텔, 식음료 공간을 갖춘 납골당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족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고인을 기억하고, 나아가 남아있는 가족들이 음악회를 즐기고, 결혼식이나 돌잔치처럼 특별한 가족 행사가 이루어지면 어떨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잠들어있는 납골당이 어쩐지 두렵고 엄숙하게 느끼곤 한다. 납골당을 찾을 때마다 우리가 죄송함, 슬픔을 느끼는 것이 진정 고인이 원하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물론 클라이언트가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을 처음부터 반기지는 않았지만, 점점 내가 바라보는 것에 공감하게 되며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전경련 세상의 모든 아침

Q. 공간과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공간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A.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우리 홈페이지를 보면 '많은 디자인 언어 중 우리들이 표현하는 중심에는 Nobility가 있습니다.' 라는 문구로 리빙 엑시스를 소개했었는데, 아마 25년? 30년 전에 쓴 글일 거다. 굳이 Nobility를 풀어서 표현하자면, 격(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격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왔고 직원들도 여럿 바뀌면서 많은 작업을 해왔지만, 격(格)에 대해 아직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멋진 건축, 공간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친절하고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 작은 한 두 그루의 나무와 풀밭이 건축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자연과 맞닿은 공간을 만들어가면서 덕도 보고 우쭐대기도 했지만,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한없이 겸손해진다.

Q. 현역 디자이너들 중 최고참 선배 세대에 속한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업계가 어려운 시점에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도 과거에 어찌 예측할 수 있었겠나. 앞으로도 또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어렵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조차 예측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더이상 예측하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되는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엇이든 좋다. 특히 요즘 같은 힘든 시기는 진솔함이 더욱 와닿는 때이기도 하니까 이렇게 어려울 때 진솔한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 더욱 돋보이지 않을까. 다만 이야기할 분명한 매개가 있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건축가는 건축으로. 마지막으로, 디자이너 후배들이 '우리는 위대한 것을 만들고 있으며, 이 위기의 순간에도 누군가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을 보고 감동을, 혹은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는 프라이드를 가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